바울 기념교회 터 Saint Paul church
이재성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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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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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3자리코드 ctCode | PIS |
한글 도시명 ctKname | PIS |
영문 도시명 ctEname | Poitiers |
국가 2자리코드 code2 | TR |
유엔 구분 un_subregion | Western Asia |
국가명 한글 country_kname | 튀르키예 |
한글설명 expl | 피시디아 안티옥(성서의 비시디아 안디옥)은 현지명 얄바츠(YALVAC)의 북쪽으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안디옥은 슐탄산의 남쪽 비탈의 비옥한 땅에 세워진 피시디아의 한 도시였다. BC 39-36년에는 갈라티아(Galatia)의 왕 아민타스(Amintas)의 수중에 들어갔으나 그가 죽은 BC 25년 로마제국으로 편입되었다. 라틴어로된 비문들을 해독한 결과 안디옥이 약 200년간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도시는 로마의 속주 피시디아의 도시들 중에서 가장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도시였다. 공식 언어는 라틴말이었으나 민중은 그리스어를 사용했고, 극소수의 사람들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땅이 기름지고 생활환경이 좋았으므로 토착민과 이주자들이 섞여 살았다.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안디옥의 인구가 3-4만명 정도였고 AD 3세기가 이 도시의 가장 융성했던 시기였다. 안디옥은 신학의 중심지로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제 1차 전도 여행 시 밤빌리아의 버가를 거쳐 도착한 곳이며, 이곳의 유대인 회당에서 사도 바울로서 첫 번째 기록된 설교를 했다. 당시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따랐지만, 결국은 쫓겨나서 이고니온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현재 남은 유적으로는 아우구스투스 신전, 로마시대의 목욕탕, 사도바울의 교회, 유대인의 회당, 석주가 서있는 거리, 성벽 등이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