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여행] 김천 '물소리 생태숲'....여울 소리 아득한 숲속의 숲, 하늘과 맞닿은 솜털을 보았다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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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27   |  발행일 2020-11-27 제14면   |  수정 20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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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 부항면 물소리 생태숲의 끝자락에는 공중학습장·놀이터·출렁다리가 있다. 멀리 보이는 화주봉 능선이 솜털 같다. 봄이면 솜털 같은 능선은 철쭉으로 온통 붉게 물드는데, 화주봉은 꽃이 붉게 피는 산이라는 뜻이다.

부항댐 부항호를 오래 지나고 터널을 두 개나 지나면 산에 안긴다. 1천m가 넘는 산이 8개나 있는 부항면, 부항천이 내어놓은 길을 따라 더욱 깊이깊이 산에 안긴다. 면 소재지 천변의 사등숲은 여전할까. 여전하다. 저 파출소 뒤에 망루가 있지. 주변이 좀 더 번화해진 건가. 월곡리를 지난다. 학교가 있고 우체국이 있고 상회도 있으니 큰 마을이다. 학교숲이 대단히 멋지다. 하대리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끝없는 시골길이다. 곧장 가지만 빙빙 도는 느낌이다. 대야리 갈불마을로 들어간다. 대야의 원래 이름은 천지(天地)였단다. 하늘로 향하는 길의 오름이 확연하다. 곧 파천2리 동구가 열린다.

백두대간 중심 황악산·삼도봉 사이
화주봉 깊은 산속에 조성한 생태숲
맑디 맑은 부항천의 최상류 흘러

물·바람·새소리 향유하는 탐방로
계곡 가로지르는 아찔한 출렁다리
편백나무 도서관·세족장도 눈길
화전민 집, 옛 모습 그대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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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학습장의 창속에 계곡과 먼 산들이 아득하다. 바람소리·새소리·물소리가 들린다.

◆숲실의 끝에 다시 숲

파천리는 부항면의 중심지대에 위치한다. 부항천이 뱀처럼 굽이쳐 흐른다고 파천이다. 초입에 산뜻한 집 하나, 국화를 예쁘게도 심어 놓았다. 한참을 들어가면 까리밭골이다. 예부터 마을에 꽈리가 많이 자라 꽈리밭골이라 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음이 변했다. 집이 서넛쯤 되려나. 여기는 예닐곱쯤 되려나. 골짜기는 길고 집들은 따로 또 함께 띄엄띄엄 들어서 있다. 버스정류장을 네 번째까지 헤아리다 잊어버렸다. 부항천에 하얀 너럭바위가 자주 펼쳐지고 콸콸 물소리 가깝다.

꽈리밭골 다음은 숲실이다. 임곡(林谷)이라고도 한다. 사방에 숲이 울창하다는 마을이다. 고지미재를 사이에 두고 충북 영동의 상촌면 흥덕리와 이웃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금의 주산지로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길은 좁고 몹시 가파르고 꾸불꾸불하다. 집들은 부항천 계곡에 바짝 붙어 뜨르르 이어진다. 커다란 바위 위에 평상이 앉아 있다. 곧 득도할 것 같다. 이 깊은 골짜기에 사람들은 어떻게 찾아 들어온 것일까. 숲실의 끝은 다시 숲, 마을의 마지막 집 위로 산의 마루금이 가깝다. 여울 소리 아득한 가을 깊은 숲속에 건물 하나가 떠 있다. '물소리생태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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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 탐방로. 수량은 적지만 물소리는 끊임없다.

◆물소리 생태숲

건물은 물소리 생태숲의 방문자센터다. 입구 오른쪽에 계곡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깊이 내려간다. 김천 물소리 생태숲은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한 황악산과 삼도봉 사이에 있는 화주봉에서 내려오는 원시림의 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김천시는 2010년부터 산림유전자원을 보존하고 휴양공간을 만들기 위해 물소리생태숲을 조성했다. 옛날부터 계곡의 물소리가 커 옆 사람과 대화하지 못할 정도라 숲의 명칭을 물소리라고 지었다고 한다. 넓이는 약 5만㎡. 계곡을 중심으로 물소리 탐방로, 바람소리 탐방로, 새소리 탐방로가 조성되어 있고, 방문자 센터, 공중학습장, 숲속학교, 자생식물원, 사계의 정원, 주제 숲, 세족장, 휴게쉼터, 출렁다리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하늘과 맞닿은 능선이 솜털 같다. 봄이면 저 솜털 같은 능선이 온통 붉게 물든다. 철쭉이다. 화주봉은 꽃이 붉게 피는 산이라는 뜻이다.

물소리 탐방로는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다. 계곡의 양쪽에는 조금 편안한 산책로가 나란하다. 오른편의 화주봉 쪽으로는 바람소리 탐방로가 열려있고 왼편의 삼도봉 쪽에는 새소리 탐방로가 있다. 길은 모두 생태숲 끝자락의 공중학습장에서 만난다. 계류를 따라간다. 무지개다리, 돌계단, 통나무다리가 필요한 자리마다 놓여 있다. 좁장한 곳은 폴짝 건너지르면 그만이다. 이 계류가 부항천의 최상류다. 마시고 싶을 만큼 맑다. 물길은 삼도봉 아래 900m 지점에 위치한 '물부리터샘'에서 발원한다. 천은 부항댐을 거쳐 12㎞를 흐른 끝에 감천과 합류한다. '물부리터샘'은 2012년에 지어진 이름이다. 원래는 '삼산약수터'라 불렸던 샘이다. 수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물소리는 끊임없다. 사람들이 왜 이 골짜기로 들어왔는지 어쩐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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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해놓은 화전민의 집. 화전민은 1970년대에 모두 사라지고 흔적만 남았다.

'사계의 정원'이 조그맣게 나타난다. 봄에는 애기개나리, 여름에는 핑크빛 노루오줌, 가을에는 보랏빛 투구꽃, 겨울에는 노란 복수초가 피어나는 정원이다. 지금 정원은 쓸쓸하다. 계곡을 벗어나 산책로에 오른다. 하늘이 바짝 다가오는 길가에 '자생식물원'이 있다. 더덕과 감자난초, 곰취 등이 자라고 외로운 호랑이가 이곳을 지킨다. 희귀식물들이 사는 '희귀원'과, 향기 나는 식물들이 모인 '향기원'도 있다. 딱딱딱딱 딱따구리 소리가 들린다. 기이한 새소리도 들린다. 크낙새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슴가족이 평화롭게 마주 선 곳에는 '주제숲'이 있다. 향기 나는 숲, 만져보는 숲, 꽃이 피는 숲 등 다양한 주제를 테마로 꾸며놓은 곳이다. 12지신과 함께하는 쉼터도 있다.

이제 생태숲의 끝이다. 망루처럼 지어진 공중학습장이 있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가 있고 아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터가 있다. 공중학습장의 열린 창으로 계곡과 먼 산들이 조망된다. 아득하다. 창으로 바람이 들고 새소리가 들고 물소리가 든다. 산이 높아 원래 사람의 접근이 어려웠던 숲. 생태숲을 조성하지 않았다면 감히 오를 수 없는 골짜기였다 한다. 지금도 여전히 오지이기는 하다. 입구에서 이곳까지는 약 700m 정도 된다. 약한 오르막길이지만 등이 후끈하다. 바짝 여미었던 옷을 풀어헤친다.

출렁다리 건너 산책로를 따라 다시 방문자센터로 향한다. 길가에는 어린 편백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물소리 들으며 무럭무럭 자라라. 길 가 산기슭에 집 한 채 보인다. 최근에 복원해 놓은 화전민의 집이라는데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생태숲 일대에는 15가구 정도의 화전민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후 6·25전쟁 때 많은 피란민이 이주해 왔다고. 그들은 야초와 잡목을 태워 농경지를 만들었고 감자와 옥수수 등을 키우며 살았다고 한다. 화전민들은 1968년 '화전정리법'이 공포되면서 사라졌다. 너와집과 외양간, 창고와 뒷간, 텃밭 등이 그럴듯하다. 옛 방식 그대로 시공하기 위해 낫으로만 나무껍질을 벗겨 집을 지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데크를 깔고 있다. 어떤 공간이 생겨나게 될까. 숲 조성은 진행형이다. 방문자 센터에는 전시실과 도서관, 목공예 체험장 등이 있다. 또한 숲 해설가가 상주하고 있어 언제든지 숲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전시실에는 생태숲에 대한 이야기, 생태숲에 살고 있는 식물과 곤충, 동물들에 대한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도서관은 방 전체가 편백나무다. 책을 읽어도 좋고 잠시 누워 눈을 감아도 좋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의 결이 온몸에 쟁쟁하다. 지고하고 궁극적인 자연을 무한정 향유하고 이용하는 일, 호사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성서 지나 성주 가는 30번 국도로 계속 달려 김천 대덕면으로 간다. 대덕면소재지에서 지례 방면 3번 국도를 타고 가다 상부삼거리에서 부항댐 쪽으로 좌회전해 903번 지방도를 타고 간다. 경부고속도로 김천IC에 내려 김천역 방향으로 간 뒤 3번 국도를 타고 남향해 부항댐으로 가도 된다. 월곡리, 하대리 지나 대야 1리에서 좌회전해 대야길로 가다 파천2리 이정표에서 우회전해 끝까지 오르면 김천 물소리 생태숲이다. 계곡 양측으로 빼곡히 집들이 들어서 있고 길이 좁아 조심해야 한다. 갈림길마다 이정표가 있으나 잘 살펴야 한다. 생태숲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동절기)까지며 월요일은 쉰다. 주차와 이용 요금은 무료다. 방문 전 운영 유무를 문의해 보는 것이 좋겠다. (054)435-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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