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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로 부르기엔 아름다워…망우리로 떠난 시간여행

서울관광재단, 광복절 75주년 맞아 중랑구 명소 소개
한용운·이중섭 등 근현대사 인물이 잠든 '망우리공원'

(서울=뉴스1) 윤슬빈 여행전문기자 | 2020-08-15 06:00 송고 | 2020-08-18 15:27 최종수정
용마산_전망대에서 야경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하 서울관광재단 제공
용마산_전망대에서 야경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하 서울관광재단 제공
오는 17일이 임시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나들이는 가고 싶은데 마땅히 생각난 곳이 없다면 망우리공원을 중심으로 역사와 자연을 품은 서울 중랑구를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서울관광재단이 8.15 광복을 맞아 애국지사들이 잠들어 있는 '망우리공원'을 연휴 여행지로 추천했다.

근심을 잊는다는 뜻을 가진 '망우', 근심과 걱정을 조금 내려 두고 산바람과 함께 애국지사들의 묘역을 둘러보고 나면 오히려 묘하게 힐링 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으로 알려진 용마산 및 대형마트가 늘어선 가운데에서도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우림시장까지 다양한 매력이 볼거리를 더한다.
망우리공원_공원을 산책 중인 가족의 모습
망우리공원_공원을 산책 중인 가족의 모습
호젓한 숲길 따라 애국지사의 묘역을 만나다  

일제는 1933년 미아리의 공동묘지가 가득 찰 것을 대비해 망우리 고개에 228만3000㎡(약 70만평)에 달하는 대규모 공동묘지를 조성했고, 1973년까지 서울시의 공동묘지로 사용되었다.

공동묘지가 되어 일반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했던 망우리는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며 숲과 산책로를 따라 애국지사의 묘역을 만나는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된다.

망우리 고개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현재의 동구릉을 능지로 정하고 돌아오면서 "이제는 근심을 잊게 됐다"라고 말했다하여 망우(忘憂)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고 전해진다.
이성계가 먼 미래에 조국의 광복에 대해 열망과 근심이 가득했던 애국지사들이 망우리에 잠들 것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현재의 망우리 공원과 어울리는 작명을 한 셈이 됐다.  

망우리 공원에 잠들어 있는 가장 유명한 애국지사는 만해 한용운 시인(1879~1944)이다. 안창호 선생의 묘가 도산공원으로 이장되면서 현재 망우리 공원의 유일한 최고훈격인 대한민국장 수여자이다.
'님의 침묵'을 집필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한용운 시인 묘역
'님의 침묵'을 집필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한용운 시인 묘역
우리에게는 '님의 침묵'이라는 시로 잘 알려진 한용운 시인은 민족대표 33인으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시인이자 스님이었던 그는 불교도들이 비밀리에 조직한 단체에서 항일운동을 지속해 나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광복을 1년 남겨놓고 별세하여 망우리 묘지에 안장됐다.

한용운 시인의 묘소와 멀지 않은 곳에 조봉암 선생(1898~1959)의 묘소가 있다. 조봉암은 청년 시절 3.1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른 후 독립운동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사회주의 진영에서 활동하였으나 해방 후 중도파의 길을 걸었다.

대한민국의 제헌국회의원과 농림부 장관을 지냈고, 제2대 및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대통령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1959년에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하여 망우리에 묻혔고, 2011년 대법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비문조차 없는 묘비가 오랜 세월 동안 침묵의 소리로 항변한 세월을 대변하는 듯하다.

오세창 선생(1864~1953)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서예가로 3.1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으로 활약하여 3년간 옥고를 치렀다. 한성순보 기자를 지내기도 했으며 천도교에서 일제에 비타협적인 보수파 노선으로 활동했다. 근처에 있는 방정환 선생의 묘소 묘비에 '동심여선'(童心如仙)이라 새겨진 글자가 오세창 선생의 글씨이다.

어린이날로 대표되는 방정환 선생도(1899~1931) 망우리에 묻혀있다. 그는 어린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면서 어린이 교육을 강조하고 소년운동을 주도했다.

'아이의 마음은 신선과 같다'라는 묘비명 동심여선(童心如仙)이 그의 삶을 대변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방정환 선생이 청년 시절에 3.1운동 소식을 알리는 '독립신문'을 몰래 인쇄하여 배부하다 체포되고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전개하려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꾸준히 감시를 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많은 가산을 독립운동 자금에 동원하였고 언론인이자 사학자로 문화운동 형태의 독립운동을 실천했던 문일평 선생(1888~1939)을 비롯해 안창호 선생의 비서로 상해 임시 정부에서 일한 유상규 선생(1897~1936), 1920년 의열단 단원 박재혁이 부산경찰서장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중상을 입혔는데 그가 거사하도록 도왔던 오재영(1897~1948) 등의 애국지사도 망우리 공원에 묻혀있으니 함께 들러 볼 만 하다.
역사문화코스의 어린이 모험 놀이터 시설 중 개미터널
역사문화코스의 어린이 모험 놀이터 시설 중 개미터널
근·현대사의 생생한 역사가 고스란히  

망우리 공원을 즐길 수 있는 탐방코스는 '역사문화코스', 인문학길 '사잇길', '서울 둘레길 2코스'로 나뉘어 있다. 이중 서울 둘레길2코스는 용마산과 아차산까지 아우르는 장거리 코스이고 온전히 망우리 공원을 즐기는 코스는 역사문화코스와 사잇길이다.

두 코스 모두 총 길이는 2.7km, 1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구간으로 망우리 공원에 잠들어 있는 유명인사를 만나면서 녹음이 우거진 공원을 천천히 산책하기 좋은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역사문화코스는 13도 창의군 탑을 시작으로 박인환 묘와 이중섭 묘를 지나 어린이 모험 놀이터를 통해 용마 테마공원으로 내려와 충익공 신경진 신도비에서 끝난다.

망우리공원 아래 체육시설이 있는 곳으로 가면 뾰족하게 선 13도창의군탑을 만난다. 1907년 일본이 정비7조약을 내세워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자 전국적으로 의병을 일으켜 서울로 진격하기 위해 결성된 의병부대인 13도 창의군의 정신을 기리는 탑이다.

전국에서 양주로 집결한 창의군은 선발대를 동대문 밖 30리(약 11km)까지 진격하였고, 일본군과 혈전을 벌이다 퇴각하였다. 하지만 총대장이었던 이인영이 부친상으로 인해 지휘권을 내려놓고 3년 상을 치르러 귀향하면서 창의군은 해산되어 다시 전국으로 흩어졌다. 결과는 실패했지만, 그들이 국가를 위해 의로 뭉쳤던 그 날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해볼 수 있다.

탑을 지나 산책로를 따라 망우리 공원으로 올라가면 공원의 메인 산책로로 들어가기 전 오른쪽으로 박인환 시인의 묘소로 가는 표지판이 나타난다. 박인환 시인은 도시적 감성인 개인의 특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때로는 문명이 인간을 황폐하게 만든다는 비판적인 인식을 담고 있는 모더니즘 시를 썼다.

그의 묘비에는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라는 '세월이 가면' 시의 일부가 적혀있다. 시인이 작고하기 일주일 전에 지은 마지막 작품임을 알고 다시 시구를 되새기니 그리운 이에 대해 애달픔이 더욱 사무치게 다가온다.
 
박인환 시인의 묘를 지나 이중섭 화가의 묘로 향한다. 한국 서양화의 대표로 뽑히는 이중섭 화가는 일제에 지배받던 우리 민족의 한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소를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한국전쟁 이후에 부인과 자녀들을 일본에 보내고 가족을 그리워하는 그림을 많이 남기기도 했다. 그의 묘비에도 헤어진 가족과 떨어져 보낸 시간을 채우려는 듯 아무런 글도 없이 그가 그린 가족화가 조각되어 있을 뿐이다.

이중섭 화가의 묘를 지나면 용마산 약수터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산책로를 따라 하산 방향으로 내려가면 어린이 모험 놀이터가 나타난다.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철이나 플라스틱이 아닌 자연 친화적 소재로 만들어진 놀이기구가 많아 눈길을 끈다. 개미터널, 집라인체험, 미끄럼틀 등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공간과 더불어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용마랜드 회전목마
용마랜드 회전목마
어린이 모험 놀이터를 지나 하산로로 망우리 공원을 빠져나오면 옛 놀이동산인 용마랜드가 나타난다. 현재는 폐업한 놀이공원으로 녹슨 채 멈춰버렸지만, 회전목마와 바이킹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레트로(복고) 감성과 함께 추억의 사진을 남기려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의 배경으로 등장해 다시금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단, 사진과 영상 촬영 장소로 운영되어 입장료가 1만원을 내야 들어갈 수 있다. 용마랜드를 지나 망우동으로 내려오면 역사문화코스의 마지막 지점인 충익공 신경진 묘역이 나타난다.

신경진은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왜적과 싸우다 패한 신립 장군의 아들이다. 임진왜란 후 왕위에 올랐던 광해군을 폐위시키는 인조반정을 주도한 인물로 병자호란 이후에 청과의 외교에 앞장선 인물이다.
전망대에서 본 중랑천과 남산 일대의 야경과 노을
전망대에서 본 중랑천과 남산 일대의 야경과 노을
화려한 도시 야경을 볼 수 있는 용마산 

용마산은 중랑구 면목동과 광진구 중곡동 사이에 있는 산이다. 아차산과 용마산, 망우산이 차례대로 이어지며 산세를 이루고 있는데, 그중 최고봉이 용마산의 정상인 용마봉(348m)이다. 용마산은 지형이 대부분 암반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크고 작은 돌부리가 많고, 경사도가 심한 오르막길과 데크 계단으로 등산로가 이어져 있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연이어 거친 숨을 몰아쉬게 된다. 잠시 숨을 고르며 등 뒤로 고개를 돌려보면 서울 도심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서울을 감싼 성벽처럼 높게 선 북한산의 능선과 그 아래 놓인 강북구 일대부터 중앙부에는 중랑천을 따라 늘어선 도심과 서쪽으로는 중랑천과 이어지는 한강과 남산 일대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화려한 대도시인 서울의 풍경을 한눈에 다 담을 수 있는 곳이라 야경 명소로 입소문이 나 있다.

용마산을 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등산코스는 2가지이다. 첫 번째는 용마폭포공원에서 출발하여 중랑구 둘레길을 따라 정상인 용마봉으로 오르는 것이고, 두 번째는 '뻥튀기 공원'에서 시작하여 팔각정인 용마정을 지나 정상인 용마봉으로 가는 것이다.

두 코스 모두 오르막으로 된 암반 지대와 데크 계단으로 등산로가 나 있어 난이도에는 큰 차이는 없다. 단, 용마정은 정상부에 비해 해발이 낮아 왼쪽으로 아차산의 능선에 가려 잠실 일대의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용마산에서 서울의 풍경을 가장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정상인 용마봉 아래에 있는 전망대이다. 오히려 정상인 용마봉은 주변이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시야가 제한적이다. 용마봉에서 용마정 방향으로 5분 내려오면 전망데크가 나타난다. 오른쪽으로 북한산부터 남산 일대를 지나 왼쪽으로 한강 위에 놓인 올림픽대교와 하늘 높이 우뚝 서 있는 롯데타워의 야경까지 감상할 수 있다.  
웰빙콩나물의 묵사발
웰빙콩나물의 묵사발
하산 후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우림시장 일대는 과거 마장동 우시장으로 소를 팔러오던 지방 사람들은 먼 거리를 오느라 지친 소에게 하룻밤 여물을 먹이고 쉬게 하던 장소였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주변으로 상권이 생겼고, '소가 숲을 이룬다'하여 우림(牛林)시장이라 불리었다.

현재는 약 200여 개의 점포가 500m 길이로 곧게 뻗어 있는 길에 밀집된 골목형 시장이다. 비를 막아줄 수 있도록 지붕에 아케이드를 설치돼 있고, 차량 60대가 주차할 수 있는 무료 주차장과 배달을 위한 택배 차량 운행 서비스를 등을 도입해 최신식 재래시장으로 탈바꿈됐다.

우림시장에는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깔끔한 가성비 좋은 먹거리들이 많다. 굳이 장을 보지 않는 사람들도 시장을 찾아 끼니를 해결할 정도다. '정가네 홍두깨 손칼국수'는 다수 매체에 소개되었을 정도로 우림시장을 대표하는 먹거리 중 하나다.

홍두깨를 이용하여 직접 손으로 면을 반죽한다. 꽤 큰 그릇에 애호박과 김, 깨가 올려져서 칼국수가 나온다. 적당한 두께의 면발이 쫄깃하고 국물도 맑고 시원하다.

기본메뉴는 손칼국수이지만 어묵이나 만두, 팥, 해물, 매생이가 들어간 다양한 칼국수 메뉴가 있어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 주문할 수 있다. 가격도 3500원에서 6500원 사이로 가격과 맛을 동시에 사로잡는다.

또한, 무더운 여름의 별미인 시원한 묵사발을 파는 '웰빙콩나물' 가게도 인기가 많다. 이곳의 묵사발은 주인이 직접 만든 도토리묵과 함께 다진 김치, 오이, 양배추, 김 등이 육수와 얼음과 어우러져 묵 특유의 탱글탱글한 식감을 돋군다. '서박사곱창'도 단골이 많은 맛집이다. 17년째 이어오고 있는 곱창 전문점으로 포장을 해가는 사람들도 많아 우림시장을 자주 찾는 사람이라면 곱창 가게 앞에서 한 번쯤 발걸음을 멈춘 적이 있을 정도다.


seulb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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