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는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 장소성은 한 장소에서 드러나는 특별한 성격이라 한다. 특정 장소에서 드러난 장소성을 찾아내서 정리하는 것도, 역사성을 부여하는 것도 사람이 한다. 그럴 때 기본이 되는 것은 팩트(fact) 이다. 특정한 목표 때문에 팩트를 더하고 빼서 필요한 것만 알리면 장소성이 곡해된다. 나아가 역사왜곡을 초래하여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기까지 한다. 보편적 가치가 훼손되면 국제사회에서 합의와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
역사와 장소성의 부조화(浮彫化) 사례는 도처에 널려있다. 유명한 성산일출봉과 광치기해변이 관광객에게 강제동원과 4.3의 장소로 알려진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일출봉 동쪽 해안 절벽을 따라 18개의 동굴진지가 구축되어 있다. 이것은 미군이 성산포 해안으로 상륙할 경우에 대비한 자살특공부대 시설이다. 섭지코지에서 일출봉사이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치기해변은 ‘관을 가지고 가족을 기다리는 해변’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곳에는 ‘성산읍 4.3 희생자 유족회’가 세운 위령비가 있다. 제주 전역이 아픔의 장소이지만 이곳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희생됐다.
아시아태평양전쟁기의 강제동원 장소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기록원은 현재까지 약 118만 명의 강제동원자에 대해 동원장소, 사망여부, 야스쿠니신사 합사여부, 공탁금 여부 등 10개 항목으로 검색·조회할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본적지가 경남인 사람은 8만7735명인데 일본으로 2만5923명, 남양군도로 5186명이 동원됐다. 강제동원 장소를 좀 더 구체적으로 특정하면 요코스카 마이즈루 사세보 등 진수부(鎭守府)에 1만2966명, 조선소에 560명, 광업소 탄광 탄갱으로 모두 7074명 동원됐다. 미쓰비시 등 각종 회사에 모두 1863명 동원됐고, 나가사키에서 피폭당한 2039명의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부산과 동래에서 동원된 사람은 1만4284명이다.
2015년,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23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가운데 군함도와 미쓰비시조선소 등 7곳은 한국인 등이 강제동원된 장소와 겹친다. 일본 정부는 일부 시설에서 1940년대 많은 한국인 등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국제사회에 약속했다.
2020년 도쿄 신주쿠의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산업유산정보센터가 개관됐다. 국제사회와의 약속과는 달리 제3존의 군함도 전시에서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하는 인터뷰와 한국인 등에 대한 차별이나 인권침해가 없었다고 선전하고 있다. 2021년 세계유산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약속한 등재 후속조치를 하지 않은 데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고, 충실한 이행을 촉구했다.
이번에는 사도광산이다. 니가타 해안에 위치한 사도섬은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시도하기 직전만 해도 특정 언론에 ‘일본여행, 벚꽃과 전통문화 그리고 대자연의 절경을 품은 사도섬’으로 소개됐다.
사도섬은 일본 중세시기부터 유명한 귀양지이자 광산으로 널리 알려진 장소이며, 28개소의 광산이 있다. 1896년부터 미쓰비시 합자회사가 사도광산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이곳을 에도시대(1603∼1868) 독자적 기술로 품질 좋은 금을 생산했던 장소로 약 400년간의 시대별 유적과 마을이 남아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에도시대에 광부들의 수명이 몇 년에 불과했다고 알려진 참혹한 이곳에도 1939년 2월부터 할당모집의 형태로 강제동원이 시작됐다. 사도광산에는 1940년 2월부터 1942년 3월까지 모두 6차에 걸쳐 1005명의 한국인이 강제동원 된 것으로 확인된다. 이 광산의 가혹한 노동환경에 저항하여 도주한 한국인 노동자는 148명으로 15%에 달한다. 최근에는 1949년 작성된 한국인 1140명에 대한 미지급금 기록이 발견됐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등재에 급급하여 팩트를 낱낱이 적시하지 않은 채, 역사와 장소성의 부조화(浮彫化)에 기댄다면, 게다가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와 국제적인 약속마저 이행을 거부한다면 등재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도 한평생을 반듯하게 살기 쉽지 않다. 그런데 정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문제는 이것을 극복해가는 태도이다. 팩트의 인정과 사과는 화해의 전제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이미 국내외에서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됐다. 우선 강제동원에 대한 자료발굴과 연구를 심화시켜, 더 많은 팩트를 확보해야 한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먹혀들 수 있는 정확한 대응논리를 개발해야 한다. 애국주의에 기반한 민족주의를 넘지 못하면, 자칫 한일관계로 축소될 수 있다. 국제사회의 공감과 합의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