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박스권에 갇힌 이재명 “추경 35조 규모로 늘리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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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2호 05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대규모 주택 공급 등 서울 지역 대선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21일 오후 서울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대규모 주택 공급 등 서울 지역 대선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14조원 규모의 추경 예산안을 의결한 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추경을 35조원 규모로 늘리기 위한 여야 대선후보 긴급 회동을 공개 제안했다.

이 후보는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이 제안한 35조원 규모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을 위한 추경 편성에 100% 공감하고 환영한다”며 “정부가 부담을 갖지 않고 차기 정부 재원으로 35조원을 마련해 이번에 신속하게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모든 대선후보에게 긴급 회동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의 회견은 국무회의에서 추경 예산안이 의결된 지 2시간쯤 지난 시점에 열렸다.

이 후보는 추경 재원 조달 방안으로 차기 정부 예산을 끌어오는 방식을 제안했다. 그는 “어차피 5월이 지나면 차기 정부가 예산을 집행하게 된다”며 “모든 후보가 동의하면 (정부가) 사업 예산 중에서 우선 35조원을 신속하게 예산 편성을 하고 이후 세부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차기 정부 담당자들이 하게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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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 후보의 기자회견은 선대위 내부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을 정도로 철저한 보안 속에서 준비됐다. 핵심 관계자는 “후보 본인이 직접 고민해 결단을 내렸다”며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는 이 후보의 과감한 실용주의와 ‘이재명다움’이 다시 본격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선대위 내부에서는 설 연휴 직전의 캠페인 전략을 놓고 많은 논쟁이 오갔다고 한다. “정책 메시지로 지지율을 ‘따박따박’ 쌓아 올린다”는 기존 전략에 대해 당내에선 “과감함이 부족하다. 이러다간 무난하게 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윤 후보 지지율이 빠르게 회복되면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 후보는 지난 며칠간 이 같은 의견을 청취하며 숙고를 거듭했다고 한다. 이후 내놓은 첫 작품이 이날 기자회견이다.

이 후보는 당분간 민생 현안과 당 혁신 등과 관련해 보다 과감한 제안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지지율이 30% 중후반에서 40%에 걸쳐 있는 박스권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좀 더 보폭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후보가 정부 방역 지침에 대해 보완 필요성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후보는 이날 회견 말미에 “오미크론 확산 속도가 빠르고 치명률이 낮다는 조사 결과들이 많이 발표되고 있다”며 “그런 만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유연한 방역 정책’으로의 전환, 이재명표 디지털 방역으로의 전환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존의 억압적인 방식보다는 유연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디지털 정보 기술을 이용해 스마트하게 대응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설 연휴를 앞두고 수도권 공략에도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날부터 엿새간 수도권 곳곳을 훑는 ‘수도권 매타버스’ 민생 투어에 돌입하면서다. 대선의 최대 격전지인 서울과 경기·인천 등 수도권에서 총력전을 펼치며 설 연휴 밥상 민심을 챙기겠다는 행보다.

이날 오후엔 서울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서울을 서울답게 확 바꾸겠다”며 ‘이재명 정부 서울 지역 7대 공약’을 발표했다. ▶대규모 주택 공급 추진 ▶철도·도로 지하화 ▶혼자서도 행복한 서울 ▶강북·강남 격차 해소 ▶창업 글로벌 허브 구축 ▶문화·관광 세계화 ▶생태 도시 구축 등의 공약이 두루 담겼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실정과 관련해선 “서울과 수도권에서 ‘아니,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더 이상 걱정하지 않을 수준의 주택 공급 물량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공약 발표에 앞서 원고엔 없던 사과부터 했다. “서울시민께서 부동산 문제로 많이 고통받으시고, 민주당이 기대에 못 미친 점에 대해 실망도 많이 하셨을 것 같다”며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민주당으로 변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이 자리에서 사과의 인사를 드리겠다”며 의원들과 함께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첫머리로 내놓은 주택 공급 공약을 발표할 때도 이 후보는 “민주당 정부는 서울시민의 주거권을 제대로 지켜드리지 못했다. 발 구르고 속 태우게 한 점 뼈저리게 반성한다. 집 걱정을 덜어드리지 못해 대단히 송구하다”며 거듭 몸을 낮췄다. 이 후보는 이어 “공급 방안은 어젯밤에 정리가 다 됐지만 물량을 더 확보하기 위해 (발표 시점을) 미뤘다”며 “구체적인 방안을 빠른 시일 내에 별도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선대위 관계자는 “기존에 정부가 발표한 32만 호 외에 서울 지역 신규 택지 등 추가적인 대규모 공급을 검토 중이며 곧 발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공약 발표 후엔 2030세대가 주로 찾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연트럴파크’(연남동+센트럴파크)를 찾아 시민들과 만났다. 수백 명의 인파와 일일이 악수하며 사진을 찍은 이 후보는 원고와 마이크 없이 30분 가까이 즉석연설도 했다. 여기서도 이 후보는 “정치인이 아무리 좋은 이상과 가치를 가졌어도 국민이 고통스러워하면 하지 말아야 한다”며 “그런데 민주당은 그렇게 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후보는 “제가 보기엔 대선에서 5000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될 수 있다. 2표 차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며 주변에 자신을 홍보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이재명을 실제로 보니 흉악한 사람이 아니더라” “욕을 했다는데 엄마 때문에 그랬다더라” 같은 예시를 들며 “여기 계신 분들이 하루에 한 명에게만이라도 말해 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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