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北 대남전략 50년간 안 변해… 文정부, 기대를 현실로 착각” [세상을 보는 창]

입력 : 2020-06-24 06:00:00 수정 : 2020-06-24 01:18:2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강인덕 前 통일부 장관 / 김여정 내세운 건 文정권 격하 의도 / 남북정상간 소통 여지 남긴 것 아냐 / 남북관계 장관 바꾼다고 해결 안 돼 / 청와대선 대북 인식 완전히 바꿔야 / 北, 유엔제재로 경제 대단히 나빠져 / 中 국경폐쇄 덮쳐 주민들 불만 고조 / 대남 협력사업도 지연 타개책 없어 / 南자주노선 취하도록 압박 나선 듯
문재인정부 대북정책이 길을 잃었다. 남북관계는 4·27 판문점 선언 이전으로 뒷걸음질치고 있다. 북한은 남북 합의를 무효화하고 남한을 상대하지 않으려 한다. 대남 도발도 이어간다. 미국을 향해선 핵무기 사용을 거론하며 ‘종말’을 위협하고 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석좌교수)은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기대를 현실로 착각한 데 근본 원인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통일부 장관 한 사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청와대의 대북 인식이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 내용이 왜곡됐다는 청와대의 비판과 관련해 “볼턴 주장이 얼마나 정부에 타격을 주는 내용인가”라며 “그렇다면 사실이 아니라고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강 전 장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에서 북한 문제를 담당하고 김대중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지낸 북한 전문가다. 인터뷰는 지난 19일과 23일 두 차례 전화로 진행됐다.

-북한이 왜 이렇게 강경하게 나올까.

“유엔의 대북제재가 완화되지 않아 북한 경제 사정이 대단히 나빠졌기 때문일 것이다. 압록강·두만강 국경선을 2월 초 폐쇄해 중국으로부터 상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이게 있어야 장마당이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북한 주민의 불만이 커지는 모양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7일 주재한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평양 시민 생활 문제를 논의했다. 평양 시민들에 대한 대책도 제대로 세울 수 없는 처지다. 북한군 지휘관조차 하루 식량 배급량을 줄이는 형편이라고 한다.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엘리트 집단의 반발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정부가 약속한 철도·도로 연결,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협력사업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자 자주노선을 취하도록 압력을 가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북한 내부 사정이 그렇게 어려운가.

“북한은 1960년대부터 국민총생산(GNP)의 25∼30%를 군사비에 쓰면서 경제건설을 하는 노선을 걸어 왔다. 농촌개발이나 주민을 위한 경공업·수출 산업이 될 리 없다. 1990년대 중반 수백만명이 아사한 ‘고난의 행군’이 재현될 수도 있다. 국제사회의 제재조치가 상당히 강력해 북한 경제는 상당히 나빠질 것이다.”

-북한이 도발 수위를 어디까지 높일 것으로 보는지.

“(‘레드라인’으로 여겨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는 쉽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미국과의 대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남 도발을 통해 미국에 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 북방한계선(NLL) 등에서 국지 도발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대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남공세를 주도하는데.

“김정은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김여정은 문재인정권을 상대한다는 구도를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겠나. 우리 정부를 격하하려는 것이다. 김정은은 새로운 대남·대미 전략을 구상하는 기간으로 삼을 수 있다.”

-김정은이 남북 정상 간 소통의 여지를 남기기 위해 김여정을 내세웠다는 시각도 있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이 청와대의 대북특사 제의를 거절한 것은 문재인정부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닐까. 오는 11월까지 미국 대선 기간이기 때문에 미국을 이용해보자는 생각일 것이다. 간접적인 대미 압력의 일환으로 우리에게 공세를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

-김여정의 대북전단 살포 중단 요구를 정부가 몇시간 만에 수용했다. 굴종적 태도 아닌가.

“1970년대 중앙정보부에서 3년 동안 심리전국장을 했다. 북한이 가장 아파하는 게 대북전단이다. 이런 작전을 무기로 갖고 있을 때 북한과 협상이 된다. 대북전단을 막아서도 안 되지만 막는다고 해도 그냥 막으면 되지 ‘잡아넣겠다’, ‘군대를 동원해 막아야 한다’는 소리를 왜 하나. 기본적으로 대북전략은 힘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북한과 대화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무조건 무엇을 준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남북관계가 2년 전으로 회귀하고 있다. 정부 대북정책 실패의 방증 아닌가.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라고 정부에 권고하고 싶다. 1970년대부터 50년 가까이 남북대화를 했지만 북한의 대남전략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정부가 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너무 안이하게 접근했다. 유엔 대북제재가 여전하고 미국의 독자제재도 날로 강해지는데, 남북 철도·도로를 연결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하는 게 가능하겠나. 정부가 기대를 현실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이것부터 고쳐야 한다. 우리에게는 핵이 없으니 한·미동맹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여기에 너무 소홀했다. 정부가 대북전략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

-정부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대화 없는 대화’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대화 없는 대화도 대화다. 대화를 할 수 없을 때는 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이 남북대화에 나설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되면 대북특사 파견 같은 쓸데없는 제의를 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우리와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

-청와대는 여전히 대화에 무게를 두는 듯한데.

“청와대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운 경제를 생각하면 휴전선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평화적 관리는 말로 되는 게 아니다. 여기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도 있지 않나. 남북 간에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화는 해야 하지만 우리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할 힘을 가졌다는 점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사퇴를 계기로 외교안보라인 쇄신 목소리가 높다.

“통일부 장관이 물러났다고 남북문제가 해결될까. 남북관계에 새로운 계기가 조성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청와대가 북한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면 남북관계가 잘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존 볼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이 공개되면서 불똥이 청와대에도 튀었다.

“회고록 내용이 100% 맞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문재인정부가 북한에 대한 접근이랄까 남북대화랄까 너무 서두르지 않았느냐는 생각이다. 볼턴은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가 아니다’고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 선언이나 9·19 남북군사합의에 보면 한반도 비핵화라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이것은 주한미군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전술핵무기뿐만 아니라 한반도 주변에 와있는 미군 함정·비행기, 괌 같은 데 있는 핵까지 다 제거하라는 것이다. 한·미동맹 깨고 미군 철수하라는 얘기다. 정부가 북한이 회담에서 쓰는 말이나 용어가 가진 정치적 의미를 너무 가볍게 본 것 같다.”

-청와대는 “사실 왜곡”이라고 비판하는데.

“볼턴 주장이 얼마나 정부에 타격을 주는 내용인가. 그게 아니라고 분명히 얘기해야 한다. 북한과 합의했던 문서 속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얘기가 들어 있다. 북한의 전략전술에 말려들었다는 오해를 받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다. 나는 처음부터 이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트럼프는 북한에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 같다.

“트럼프가 북한 문제나 김정은과의 회담 같은 것으로 선거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 시기는 지났다. ‘노딜’로 끝난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번복시킬 수 있을까. 트럼프가 자신의 외교전략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대선이 5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무엇을 얻을 수 있겠나. 북한으로서도 차기 미 대통령이 누가 될지 모르는데 트럼프에게 양보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선 결과를 본 뒤 결정하겠지.”

원재연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르테미스 희진 '금발 여신'
  • 아르테미스 희진 '금발 여신'
  • 한소희 '시선 사로잡는 타투'
  • 송지우 '깜찍한 꽃받침'
  • 표예진 '반가운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