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인문학 기행] 매일 에펠탑에서 점심 드는 모파상의 비밀은?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유럽인문학기행-프랑스] 에펠탑(1)


샤르데요 궁에서 바라본 에펠탑. 샤르데요 궁에서 바라본 에펠탑.

“꼭대기 층 레스토랑으로 직행하는 승강기 표를 한 장 주시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던 1890년 어느 가을날이었다.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의 매표소에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길게 기른 콧수염은 그의 성격이 얼마나 고집스러운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뒤에는 외국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표를 받아든 사내는 곧바로 승강기에 올라탔다. 승강기는 순식간에 꼭대기 층에 도착했다. “딩~동”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레스토랑 지배인이 달려왔다.


에펠탑 승강기. 에펠탑 승강기.

“선생님, 오늘도 오셨군요. 코트와 모자는 이리 주십시오. 잘 보관해 놓겠습니다.”

“고맙소. 오늘도 창가의 자리를 줄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선생님. 늘 가시는 자리를 비워놓았습니다.”

지배인은 창가의 전망 좋은 자리로 사내를 안내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좌석인 듯 했다. 굽이굽이 흐르는 센 강은 물론 파리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오늘은 뭘 드시겠습니까?”

“먼저 커피부터 한 잔 주시게. 식사는 조금 있다 하도록 하지.”

“예, 선생님. 그렇게 알겠습니다.”


에펠탑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파리 시내. 에펠탑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파리 시내.

지배인이 주문을 받고 물러나자 사내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 들고 왔던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이어 돋보기안경을 펼쳐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지배인이 커피를 한 잔 들고 왔다. 짙은 커피 향이 에펠탑에서 내려다보는 파리의 가을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커피 색깔은 샹젤리제 거리의 단풍잎처럼 보이기도 했다.

“선생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사내 앞에 커피 잔을 내려놓고 돌아가려던 지배인이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그의 얼굴에는 부담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사내는 담뱃재를 털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지배인의 얼굴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그러시구려. 무엇이든 부담 없이 물어보시게.”


센 강 유람선에서 바라본 에펠탑. 센 강 유람선에서 바라본 에펠탑.

지배인은 헛기침을 한두 번 한 뒤 눈을 창밖으로 두면서 다시 말을 꺼냈다.

“선생님이 매일 점심때마다 저희 레스토랑을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 레스토랑은 파리의 명소가 됐답니다. 프랑스의 대소설가인 모파상 선생님이 단골이시니, 어떻게 소문이 안 날 수가 있겠습니까?”

에펠탑의 꼭대기 층 레스토랑을 찾은 사내는 바로 『여자의 일생』 『비계 덩어리』 등의 소설을 쓴 유명소설가 기 드 모파상이었다.

“허허.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말씀은 이쯤에서 줄이시지요. 묻고 싶은 게 뭔지 어서 말이나 하시게.”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께서 저희 레스토랑에 점심때마다 단골로 오신 지도 벌써 1년이 넘습니다. 에펠탑이 완성되고 레스토랑이 문을 연 직후니까요. 그런데, 파리의 많은 식당 중에서 왜 매일 점심을 우리 레스토랑에서 드시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다들 저처럼 너무 궁금해 한답니다.”


아래에서 바라본 에펠탑. 아래에서 바라본 에펠탑.

지배인은 말을 다 털어놓은 뒤 눈을 둘 곳을 몰라 두리번거렸다. 모파상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사실 그가 모파상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혼자 궁금해서만은 아니었다. 레스토랑 사장과 종업원들은 물론 모파상이 에펠탑에서 매일 점심을 먹는다는 사실을 아는 온 파리 시민 모두가 궁금해 하는 일이었다.

“허허. 그게 궁금했던 거로군. 아무 일도 아닌데…. 하긴 궁금할 수도 있지. 1년이 넘도록 매일 같은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면 누구라도 관심을 둘 만하지.”

모파상은 담뱃불을 껐다. 그리고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들이켰다. 그는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에펠탑 바로 아래로는 센 강이 흐르고 있다. 저 멀리에서는 샹젤리제 거리와 루브르 박물관, 파리 시청, 노트르담 대성당은 물론 몽마르트 언덕도 보였다.

“내가 왜 매일 점심때마다 에펠탑 레스토랑에 올까? 다들 궁금하겠지. 어떻게 보면 우스운 답일 수도 있을 거야. 어떻게 보면 역설적일 수도 있고 말이야. 간단하게 이야기해주지. 내가 여기 오는 이유는 에펠탑을 극도로 싫어해서야.”

“예? 에펠탑을 싫어해서 에펠탑에 오신다고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호텔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와 에펠탑. 호텔에서 바라본 파리 시내와 에펠탑.

모파상은 어리둥절해하는 지배인을 보면서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다시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뒤 책을 덮었다.

“지난해 열렸던 파리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에펠탑을 만들 때 문화·예술인들이 극렬하게 에펠탑 건립에 반대했던 일을 기억하나?”

“예, 기억하고말고요. 그때 문학, 미술, 건축 등 각 분야에서 수십 명이 성명서를 발표해서 온 나라가 시끄러웠지요.”

모파상은 자기 앞 자리에 앉으라고 지배인에게 손짓했다. 손님과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은 레스토랑의 금기사항이지만 지배인은 저도 모르게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말았다. 모파상은 팔꿈치를 식탁에 대고 주먹으로 턱을 괸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당시 문화·예술인들은 ‘에펠탑이 생기면 아름다운 파리 경관이 망가진다’고 난리를 떨었지. 에펠탑이 들어서면 파리를 떠나겠다고 한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네. 나도 그 중 하나였지.”

“선생님도 에펠탑 건립에 반대하셨다고요?”

“그랬어. ‘프랑스대혁명 100주년 기념’이니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구조물’이니 하는 논리를 앞세운 정부가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결국 에펠탑은 들어섰다네. 나는 너무 실망했어.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낄 정도였지. 에펠탑을 보는 게 너무 싫더군. 하지만 집 밖으로 나오면 낮에 파리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은 하나도 없었어. 그래서 한동안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네.”


에펠탑 전경. 에펠탑 전경.

모파상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는 다시 에펠탑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지배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파리가 오늘따라 더욱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멋진 파리를 망가뜨린 에펠탑에 다시 화가 치밀었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점심도 먹어야 하고, 지인들을 만나서 차를 마시며 대화도 나눠야 하고. 그러다 문득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지. 에펠탑에 올라가서 점심을 먹으면 에펠탑이 안 보이겠다는 것이었지.”

모파상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지배인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에펠탑에 올라가면 에펠탑이 안 보인다고? 그는 모파상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고는 두 손바닥을 치며 박장대소를 했다.

“정말 그렇군요. 선생님 말씀대로 에펠탑을 안 볼 수 있는 식당은 바로 에펠탑밖에 없겠군요.”


프랑스 작가 모파상. 프랑스 작가 모파상.

“자네도 이제 내 말을 이해했군. 여기에 와야 마음 편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다네. 그렇다고 내가 언제까지나 에펠탑에서만 점심을 먹을 수 있겠나? 1909년에는 에펠탑을 해체한다고 하니 그 때는 에펠탑 밖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겠지. 자, 그건 그렇고. 지배인. 지금 내게는 에펠탑보다는 자네 얼굴을 안 보면서 식사를 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